‘인간의 비웃음을 웃음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비웃음이란 좋은 의미에서의 웃음이 아니지요. 반면에 웃음이란 기쁨과 행복한 감정의 표현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약속앞에 아브라함의 반응이 묘사되어 있는데, 아브라함이 보였던 반응은 ‘비웃음’이었습니다. 17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런 비웃음은 사라에게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18장 1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나는 노쇠하였고 주인도 늙었으니’라는 표현속에서 사라의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들을 때도 웃기는 말씀이고, 아들을 낳아야 하는 사라 본인에게도 말이 안되는 약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웃었지만 웃는게 아니었습니다. 입은 웃지만 마음은 무거웠고 답답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비웃음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인간의 비웃음을 웃음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과 틀려서 불가능을 가능케 하십니다. 자녀중에서도 ’아들을 낳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많은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납득이 안되는 내용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비웃음’으로 ’웃음’을 대신합니다.그런데 하나님은 비웃는 아브라함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본문 19절을 보면’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개역성경에는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도 ‘정녕’이란 의미의 표현을 분명히 삽입하고 있는데 ’진짜로,참으로, 정말로’라는 부사입니다. 비웃는 인간을 향해 하나님은 ’비웃음’이 아닌 ’이츠학-차하크에서 파생된 이름’이라는 이름하라고 하시는데 이츠학(이삭)이란 이름의 뜻은 기쁨과 감사와 행복속에서 나오는 ’기쁨의 웃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런 약속대로 창세기 21장 5절 이하를 보면 사라의 기쁨과 행복의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비웃는 인간에게 웃음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입니다. 살면서 만나는 많은 일들 가운데,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자에게 ’인간의 비웃음을 웃음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