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3일(토요일) 큐티: 고린도후서 9:1~9
연보란 표현은 한자어로 ‘버릴 연(捐), 도울 보(補)’입니다. 문자대로 번역하면 ‘버려서 돕는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연보하는 것이 마치 내것을 빼앗기는 것, 버리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니다. 그런데 헬라어로 연보란 표현은 ‘율로기아’로서 문자적인 의미속에는 ‘축복’이란 뜻이 있습니다. 내것을 버린다라는 의미로만 보면 ‘축복’과 연관짓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의미로 보면 연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연보하는 것을 ‘축복’과 직접적으로 연관지어 설명합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연보하면 그만큼의 축복을 자원하는것이지만, 인색하게 한다면 그만큼 축복에 대해서도 인색함의 표현이 된다는것입니다.
하나님은 받으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받으시는 하나님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모든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받으신다는 그 자체가 율로기아- 축복, 찬송의 진정한 의미가 되는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1절 이하를 보면,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마게도냐 교인들이 바친 연보를 ‘은혜의 풍성’함으로 표현합니다. ‘넘치는 기쁨, 극심한 가난, 풍성한 연보’를 묵상해보세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만, 이상하리만큼 잘 어울리고 아름답습니다.
연보는 내것을 빼앗기는것으로만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연보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의 문을 여는 것이고 은혜의 곡간 창고문을 여는것과 같은것입니다. 기쁨으로 연보하는 마음과 자세는 하늘의 축복의 곡간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은것입니다.
어려운 내용이지만 잘 묵상해서, 이번 주일에는 기쁨과 감사함으로 연보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