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인공지능에게 내일에 대해서 물어본 결과 ‘인간은 내일을 생각하며 발전했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과 공포를 가지게 되었다’라는 대답이 인상깊습니다. 사람은 내일을 생각하며 꿈을 가지지만, 미래를 생각하며 걱정하고 불안해 합니다. 내일도 결국 미래인데 왜 희망대신 걱정과 불안을 가지는걸까요? 성경은 인생이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게 된 이유를 창세기 4장에서 일러줍니다.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하나님은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는 형벌을 가하셨습니다. 이런 형벌에 대한 가인의 반응을 주의깊게 봐야 하는데, ‘14 주께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부분을 보면서 인류 최초의 2대손인데, 가인을 죽인다는 사람들은 어디서 생긴걸까?라며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는 주제는 ‘죄 지은 인생에게 찾아온 내일에 대한 불안과 걱정’입니다. 가인의 때부터 인생은 ‘내일을 걱정하기 시작하는 죄의 형벌’을 받게 된것입니다. 영어성경에 보면, 가인의 걱정들이 미래형 동사로 서술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종식시키고 희망과 소망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선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영생을 약속하는데, 영생은 내일의 걱정과 불안을 뛰어 넘게 만드는 속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원의 약속안에는 ‘미래’ 혹은 ‘과거’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구원과 영생의 비밀인데,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는 다윗의 왕국과 달리 계약적 나라가 아닌 ‘영원한 나라’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인데, 그 속에 참된 의미는 ‘믿음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마태복음 6장 34절을 보면, 예수님은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염려할게 아니라 ‘내일’이 염려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내일’의 의미가 ‘영원을 약속하신 내일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내일을 준비케 하시도록 믿음안에 서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