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8일(목요일) 큐티: 말라기 3:7~12
말라기서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지적하시는 6가지(혹은 7가지-내용 해석에 따라서) 지적내용이 나옵니다. 그 중에 우리는 5번째 지적 사항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여기서 ‘돌아오다, 돌아가다’라는 히브리어는 ‘슈브’입니다. ‘슈브’는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로 문자적으로 ‘회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해서 ‘회개하라’고 하시지만, 그들은 ‘무엇을 회개해야합니까?’ ‘어떻게 회개하면 됩니까?’라고 반문합니다. 여기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조차도 모르는 무지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번째로는 ‘회개의 필요에 대한 사무침’이 없는 것입니다. 회개의 제목도 모르고, 회개할 필요도 못느낄정도로 죄악이 만연해있었고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져 있었던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가요?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할 회개의 제목을 알고 있습니까? 또 돈을 벌고 성공해야하겠다는 간절함 만큼 회개에 대한 간절함이 있는지요?
오늘 본문엔, 내용상 6번째 지적사항도 나옵니다. 어떤 학자들은 회개의 한 부분의 예로서 하나님의 지적사항중 5번째로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포함시키기엔 너무 아까워서 따로 떼어서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이 더 하나님의 뜻에 가깝다고 믿습니다. 그 6번째 지적은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즉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모른채 ‘내것’으로 알고 사는 태도입니다. 여기서 ‘도둑질’이라고 한글성경에는 번역하고 있습니다만, 영어성경의 경우 ‘도둑질’이란 표현대신 ‘강도질’이라고 표현합니다(NASB, NIV,NRSV,KJV,NKJV). 히브리어에서는 우리 한글표현처럼 도둑질은 ‘까나브’라는 단어가 있기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까나브’라는 표현대신 강도질이란 뜻의 ‘카바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십일조’를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하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요즈음 이 시대는 십일조의 필요성에 대해서 자꾸만 부인하고 희미하게 만들려는 분위기가 짙습니다. 신학교의 교수들중에서도, 또 목사님들 중에서도 ‘십일조는 옛시대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논리보다, 그들의 마음의 의도를 하나님은 더 중요하게 보실것이 분명합니다.
이 시대엔 돈이 중요하지만 다시한번 십일조에 대해서 잘 생각해보세요. 물론 십일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조차도 흐려진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선택하라고 저도 대답할것입니다. 그렇지만, 십자가의 비밀을 안다면 십일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악가운데서 돈으로 구해내신 것이 아니라,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