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3일(금요일) 큐티: 예레미야 50:33~46
34절에 나오는 ‘구원자’라는 표현은 이사야 선지가 즐겨 사용하던 표현입니다. 히브리어 ‘고엘’을 번역하여 ‘구원자’라고 했는데 이사야서에서는 ‘구속자’라는 번역으로 더 익숙합니다. 이 낱말을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값을 지불하시고 죄의 종이었던 우리 사람들을 해방시키신 것으로 사용됩니다. 만일 유대 백성에게 구원자가 없으셨다면 그들은 멸절되었을것입니다. 바벨론에 의해 멸절되지 않았다면, 바벨론을 점령한 페르시아에 의해서 전멸당했을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이나 페르시아보다 더 강하신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의 ‘구원자’되심으로서 그들은 역사 가운데 사라지지 않고 보존된것입니다.
욥기서에서는 여러가지 고난으로 고통당하던 욥이 19장에서 이렇게 고백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또 야고보서 5장에서 일러주는바,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유대 백성들이 무언가 특별히 잘한 것이 있어서라기보다, 또 욥이 특별히 더 의로운 행동을 해서라기보다,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로 충만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유대백성을 구원하시는 구원자가 되셨고, 또 욥을 구원하는 구원자가 되신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원자를 우리가 소망하며 믿고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큰 축복이고 또 감사의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도 이런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받은 ‘은혜’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고, 받은 은혜가 헛되지 않아서 은혜를 은혜로 잘 받아 누리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