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9일(금요일) 큐티: 예레미야 44:20~30
현실을 보는 관점은 참 다양합니다. 내가 주인되어 현실을 보게 되면, 내가 경험한 만큼만의 정보만을 가지고 평가하고 판단하게됩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만큼의 정보력으로는 역사라는 거대한 현실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보고 느끼는 자신의 경험의 정보력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평가하고 판단하며 역사를 써 내려가며 살아갑니다. 이런 가운데 큰 ‘역사’라고 하는 현실을 가장 확실하게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때에 먼 훗날에 있을 홍수의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만을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웃기는 농담으로 밖엔 여겨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하신대로 흘러가게 됩니다.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레미야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따라 애굽을 의지하며 애굽으로 피난가겠다고 고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던 믿음도 휴지조각처럼 버리고 우상을 섬기겠다고 고집합니다. 그 결과에 대해서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예레미야는 앞으로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전합니다. 그 중 30절을 보면, “보라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왕을 그의 원수 곧 그의 생명을 찾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의 손에 넘긴 것 같이 애굽의 바로 호브라왕을 그의 원수들 곧 그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겨주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의 원수들 곧 그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이 역사적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역사적인 자료에 의하면 ‘호브라’왕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의해서가 아닌 그의 신하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집니다. BC570년경 리비아와 전쟁을 치르던 애굽에서 애굽의 일부 군인들이 호브라 왕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고합니다. 그리고 그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호브라왕은 신임하던 아마시스란 장군을 보냅니다. 그러나 아마시스는 리비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호브라왕의 실책을 지적하며 또 다른 반란을 일으키고 아마시스 자신이 애굽의 왕임을 자칭하게 됩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후 아마시스는 호브라를 사로 잡아 처형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던 예레미야 당시 수많은 유대인들은 호브라왕이 자신들을 지켜 줄거라 철석처럼 믿고 하나님까지 버리며 애굽을 의지함에 나아가 사모하기까지 한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한 세대만을 보고 사는 근시안적인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한심하고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은 어떤지요? 아직도 내 경험만을 가지고 내가 살아가며 써 내려가는 역사를 판단하고 결정한다면 우리 역시 근시안적인 인간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할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알아서 ‘내일일도 알지 못하는 우리’임을 기억하고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말씀대로 믿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