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 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실히 걸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빠져나갈 길 없는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주한 ‘비하히롯’ 바닷가가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앞에는 푸른 홍해가 가로막고, 뒤에는 서슬 퍼런 이집트 군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곳.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그곳은 완벽한 ‘함정’이자 ‘사지(死地)’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 지명의 이름 속에 두 가지 상반된 운명이 숨겨져 있다는 점입니다. 히브리어 어원으로 비하히롯은 ‘동굴의 입구’를 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유의 입구’를 뜻하기도 합니다. 똑같은 장소, 똑같은 위기 앞에서 이집트 왕 바로는 갇혀 죽는 동굴을 보았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해방으로 나가는 문을 보았습니다. 누구의 눈으로 보아도 그곳은 갇히게 되는 곳임에 분명했지만, 하나님은 굳이 ‘비-하히롯’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고난이라는 자극 앞에서 대개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그 첫째는 본능적인 ‘리액션(Reaction)’입니다. 자극이 오면 즉각적으로 튀어나오는 반사작용입니다. 비하히롯에서 뒤따라오는 이집트 군대를 보며 “차라리 이집트 사람을 섬기는 것이 낫겠다”며 원망을 쏟아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엔 생각의 공간도, 믿음의 필터도 없습니다. 그저 환경에 휘둘려 두려움에 압도되고, 과거의 상처와 습관으로 회귀하는 노예의 삶일 뿐입니다.
반면, 둘째는 신앙적인 ‘리스폰스(Response)’입니다. 이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믿음’이라는 공간을 확보하는 실력입니다. 상황이 나를 끌고 가게 내버려 두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 위에 내 의지를 세우는 ‘책임감 있는 응답’입니다. 모세가 홍해 앞에서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고 선포할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현재 맞닥뜨린 현실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약속의 기반 위에서 의지적으로 평온을 선택했습니다. 즉, 상황에 리액션하기보다 하나님께 리스폰스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구원의 신비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로 볼 때 깊은 바다는 ‘죽음의 입구’이지만, 물을 걷어내시는 전능자에게 바다는 그저 ‘마른 땅’일 뿐입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멈추고 믿음으로 응답(Response)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책임(Responsibility)지시고 바다 한가운데 길을 내십니다. Responsibility라는 단어 자체가 응답(Response)과 능력(Ability)의 합성어이듯, 우리의 믿음 어린 응답 위에 하나님의 능력이 더해질 때 비로소 진정한 책임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서 있는 그곳은 어디입니까? 사방이 막힌 ‘비하히롯’입니까? 그곳이 당신을 가두는 동굴이 될지,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자유의 문이 될지는 오직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동굴에 갇힌 듯한 답답함과 두려움 속에 있다면, 본능적인 리액션을 멈추고 하나님께 리스폰스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인간의 끝이라 여겨지는 그 비하히롯이,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되는 가장 찬란한 출입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