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것을 이미 알고 계시며, 동시에 우리의 소유를 주님의 사역을 위해 기꺼이 내어드릴 준비가 되었는지 물으십니다. 이름 없는 나귀 주인이 그저 “주가 쓰시겠다”는 말 한마디에 소중한 짐승을 내어주었듯, 내 삶의 ‘나귀’를 주님께 선뜻 내어드리는 순종이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세상의 왕들은 화려한 병거와 위엄 있는 군마를 타고 입성하지만,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초라한 나귀 새끼를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화려한 성공이나 눈에 보이는 영향력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려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방식을 택하셨습니다. 나의 신앙이 높아지려는 욕망이 아닌, 낮아짐을 통한 평화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는지 묵상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거리는 “호산나(지금 구원하소서)!”를 외치는 무리의 함성과 겉옷, 종려나무 가지로 가득 찼습니다. 하지만 이 뜨거운 환호 뒤에는 ‘정치적인 해방’과 ‘경제적 번영’을 바라는 군중들의 자기중심적인 기대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며칠 뒤 이 환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분노로 바꾸게 됩니다. 오늘 내가 외치는 “호산나”는 어떤 의미입니까?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줄 ‘해결사’로서의 예수님만을 환영하고 있지는 않나요? 무리의 함성에 휩쓸리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내 삶으로 분명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