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이란 표현속에는 구원함에 이르지 못하는 믿음도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믿음이라고 모두가 같은 믿음이 아니기에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 나아온다고 모두가 소원이 이루어지는건 아닌것과도 같은 이치입니다.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지만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한 사람은 예수님께 나아왔음에도 “14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라며 예수님의 책망만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표현과 더불어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표현이 있는데 ‘바라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무엇을 바라고 소망해야 하는지, 무엇을 보기를 원하는지가 뚜렸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바라는 것’ ‘보지 못하는 것’은 구원과 하나님과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구원을 바라는 자에게 믿음은 정금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믿음은 확실한 증거와 같은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주후 65~70년 사이에 히브리 기독교인들을 위해서 씌여진 서신입니다. 예수님 부활후 전파되기 시작한 복음은 많은 히브리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복음에 대한 그들의 열정은 식어져 갔고, 복음의 소중함은 현실의 난관에 부딪히며 희미해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예루살렘 성전 파괴, 로마의 화재등의 이유로 기독교인에 대한 원성과 박해가 심해져 가던 때에 예수님을 믿었던 유대인들은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런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뛰어나심과 믿음의 소중함과 유익에 대해서 일러주는 말씀이 히브리서입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중요한데, 한국교회도 기독교가 100년 이상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소중함이 서서히 식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뛰어나심과 복음을 믿는 믿음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히브리서의 말씀은 우리들에게도 귀한 가르침이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과연 무엇을 바라고 있었는지, 그리고 뭘 보기를 원했는지를 잘 살펴서 세상적인 욕망과 탐심을 버리고 구원함에 이르는 정금과 같은 믿음을 가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