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갈라디아지방은 사도 바울이 1,2,3차 전도여행때마다 방문했던 곳으로 사도 바울에겐 가장 애착이 가고 정성도 많이 기울였던 지역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1장 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됩니다. 정성을 많이 기울인만큼 사탄의 역사도 강했기 때문인데, 교회가 부흥하자 유대인들은 바울의 사도성에 대한 의문을 품게만듭니다. 메시지 대신 메신저를 흔듦으로 메시지를 흐려놓는 사탄의 전략입니다. ‘믿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질투하는 사탄은 믿음의 실체를 흔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뺀 채로 믿음만을 강조하게 만듦으로 믿음의 본질을 흐리게 만듭니다. 복음의 핵심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시대는 믿음을 강조하지만 그 믿음의 본질 혹은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 대신 돈, 명예, 성공, 평안한 삶으로 대체시킵니다. 부자됨에 대한 믿음, 성공에 대한 믿음, 긍정적인 마음에 대한 믿음으로 본질을 흐트려 놓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믿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우리에게 ‘의의 소망’을 기다리게 합니다. ‘의의 소망’이란 하나님의 나라와 연관된 것입니다. 장차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데 ‘의’가 없이는 하나님 앞에 기쁨과 영광속에 설 수 없습니다. 의가 없는 죄인에게는 심판만 기다릴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도 기쁨으로 서게 하는 ‘의의 소망’을 가지도록 합니다. 이런 믿음을 꼭 명심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의의 소망을 기다리는 믿음’에 있어서 그 믿음의 출처에 대해서 알아야합니다. 믿음생활을 하면서도 ‘강요에 의한 믿음’ 혹은 사교나 재미를 위한 ‘오락성 믿음’ 혹은 믿음생활중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결과를 바라는 ‘목적성 믿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들은 강요가 없어지거나, 재미가 없어지거나, 목적이 상실되면 사라질 믿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에 대해서 교훈합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야 말로 가장 확실하고 변치 않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믿는 믿음은 영원한 믿음이며 순금과 같은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을 기억하고 소유하도록 힘써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