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질 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라는 다윗의 고백이 나옵니다. ‘없고’ ‘없고’ ‘없나이다’라는 표현과 더불어 민수기 21장에 나오는 출애굽 광야1세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라며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가련한 측면으로 보면, 광야 1세대들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은 더 가련하고 불쌍합니다. 다른 민족도 아닌 같은 민족에게서 쫓김을 받고 죽음의 위기를 느끼면서 ‘다윗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 마스길 곧 기도’가 오늘 본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기도가 ‘마스길=교훈’이 되는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질 때’ 우리에게도 소중한 가르침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사울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다윗에겐 귀한 ‘교훈’이 있지만, 모든 것을 가진 사울에겐 그 어떤 ‘교훈’도 없습니다. 그 이유가 ‘없음의 축복, 있음의 유혹’ 때문입니다. 다윗은 없음이 축복이 된 사람입니다. 반대로 사울은 있음이 많아서 유혹에 빠진 사람입니다. 가령 사울에게 아무것도 없었다면 그토록 몹쓸 사람은 되지 않았을겁니다. 반면에 다윗은 아무것도 없어서 더욱 하나님을 찾았고 원했고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겐 없음이 축복이 된것입니다.
기독교의 진수가 ‘아무것도 없는 인간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에 관한 구원의 멧세지입니다. 가진것이 많아서 신이 인간을 선택한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인간을 선택해서 찾아오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잘 하고 있을때 찾아오신 하나님이 아니라, 죄를 짓고 숨어 있을때 그들에게 찾아오셔서 ‘네가 어디 있느냐? Where are you?’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도 죄인을 찾아 구원하시려 오셨고,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도 ‘아무것도 없을 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인도하셨습니다. 야곱도 많은 것이 있을때 이스라엘이라 불린게 아니라, 있는것도 아무 소용없어서 ‘알론바굿-통곡의 상수리나무’에서 회개하며 하나님을 부를 때 참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윗도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때’ 철저한 자기 성찰과 더불어,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 위대한 인물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