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라고 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는지 여부를 알려 하사’가 아닌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라고 했습니다. 즉 믿음을 시험하시는 것이 아닌 사랑하는지의 여부를 알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랑-아하브’이라는 히브리어는 ‘사랑, 우정’과 같은 고귀한 뜻을 가졌는데 특히 신뢰 이상의 상대에게 푹 빠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신에게 푹 빠진것이 아니라 신이 우리 인간에게 푹 빠지셨다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신과 인간 사이에는 신뢰가 전부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신뢰이상으로 사랑의 관계를 전능하신 하나님이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인간과 신은 확실한 구분이 있어서 신이 계시는 곳과 인간이 있는 곳이 구분이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신이 계시는 그곳에 우리 인간도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 이하의 말씀중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린 두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번째는, 신이 인간이 되셔서 인간에게 오신것이고 두번째는, 오신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이 계시던 곳으로 데려 가시겠다라는 약속을 하신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아하브’의 사랑입니다. 단순한 신뢰의 관계가 아닌 ‘사랑하는지의 여부’를 알려 하셨다는 그 표현속에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을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베드로와 예수님의 다시만남의 장면도 생각해보세요.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면전에서 부인했던 인물입니다. 명목도 없고 염치도 없어서 갈릴리로 물고기 잡으로 갑니다. 그러나 그곳에 찾아오신 예수님은 ‘아하브’의 사랑으로 자기 백성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다른 종교는 신에게로 찾아가야합니다. 열심히 빌어야하고 또 어떤 대가가 있어야 만남을 갖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찾아 오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은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