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1일(금요일) 큐티: 시편 10:1~18
오늘은 본문 4절을 중심으로 묵상하려고 합니다.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성경학자들은 두가지를 지적합니다. 첫번째는 실천적, 기능적 무신론 자들입니다. 이들은 엄격하게 말하면 무신론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인정합니다만, 하나님이 있다는것은 부정하지 않지만 삶속에서 하나님의 역할은 전무합니다. 하나님이 보든 안보든 상관없이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하며’라는 부분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이 계시지만 이런 악인들에겐 유명무실한 하나님입니다.
두번째는, 실제적 무신론자들입니다. 이들은 아예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하나이다’라는 부분에 해당하는 악인들인데, 엄격하게 따지면 세상엔 실제적 무신론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고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신경써야 하는 부분은 ‘실천적, 기능적 무신론’인데, 이들은 신의 존재는 분명하게 인정합니다. 그 예가 ‘토정비결, 재수, 운수’등을 생각속에 항상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위험성은 ‘신도 이용가능하다’는것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신을 설득하고, 신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신의 존재가 거북하게 여겨지면 마치 무신론자처럼 행동할 뿐인것입니다.
이런 ‘실천적, 기능적 무신론의 자세’는 우리들속에도 깊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삶속에서는 마치 하나님은 못들으시고, 못보시는 하나님처럼 마구잡이로 행동하는 것이 그 증거가 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신다면 우린 함부러 말할 수 없고, 함부러 행동할 수 없을것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라는 전제조건속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하게 되는것입니다.
오늘도 이런 말씀을 잘 묵상하면서 행여 나는 실천적, 기능적 무신론자처럼 행동하지 않았는지를 잘 점검해서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