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누구시니이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주’라는 표현을 분석해 보면, 마태복음 80회, 마가복음 18회, 누가복음 104회, 요한복음 52회, 사도행전 107회로 나타납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가임을 감안할때 ’주’라는 표현은 누가의 경우 굉장히 중요하고 또 무언가를 강조하려 했음에 분명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에게 있어서의 ’주님’의 개념과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의 ’주님’의 개념은 굉장히 특징적으로 묘사됩니다. 베드로의 경우 전도의 대상이 주로 유대인들이었기에 베드로에게 ’주님’은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로서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합니다. 사도행전 2장 36절을 보면,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고 전합니다. 특히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은 ’엘로힘’ ’여호와’ ’아도나이(주님)’로 표현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표현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주’는 그가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전에 사용된 표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후 그에겐 예수 그리스도 주님은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은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게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로 묘사됩니다.
이런 내용과 더불어 오늘날 우리들에게 아주 중요한 교훈이 되는 것은,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알기 전 ’주여 누구시니이까?’라고 질문했는데 우리들에게 있어서 ’주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 스스로 질문해 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지 못한채 ‘주’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지식이 없다면 우리들도 변화되기 전 사울처럼 알지도 못한채 그냥 ‘주여’라고 부르는 의미없는 이름이 될 수 있습니다. 장차 주님이 나타나시는 날 우리들도 사도 바울처럼 큰 영광의 주님 앞에 엎드러져 ‘주여 누구십니까?’라고 질문하게 될겁니다. 그때 주님의 대답이 ‘나는 네가 무시하고 박해하던 예수라’가 아니라 ‘나는 네게 믿고 의지하고 소망하고 사모하는 예수라’는 대답이 들려온다면 가장 복되고 가치있는 삶이 될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