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중 가장 매서운 질타가 쏟아진 대상은 당대 가장 경건하다고 자부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주님은 그들을 향해 일곱 번이나 “화 있을진저”라고 질타하십니다. 이 질타는 오늘날 종교적 타성에 젖어 있는 우리를 정조준합니다.
1. 열정의 방향이 잘못될 때의 비극
바리새인들은 전도에 열심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개종자를 얻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열정이 도리어 사람을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꾸짖으셨습니다(15절). 복음의 핵심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교만과 형식적인 전통만을 전수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헌신과 봉사가 진정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통로인지, 아니면 나의 의로움을 확인받기 위한 자기만족의 수단인지 정직하게 물어야 합니다.
2. 본질보다 세상가치에 기울어진 신앙
주님은 그들을 가리켜 ‘맹목적인 인도자’라고 부르셨습니다(16절). 그들은 성전보다 예물에 더 큰 가치를 두었습니다. 이는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보다 종교적 행위를 통해 얻게 될 실리적 유익에 마음이 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본질인 ‘하나님의 임재’를 놓친 채, 눈에 보이는 금과 예물(복)에만 집착한다면 우리 역시 신앙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3. 위선
본문의 백미는 23절과 24절에 등장하는 ‘하루살이와 낙타’의 비유입니다. 그들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 즉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철저히 챙기는 꼼꼼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율법의 가장 무거운 가치인 정의(Justice), 긍휼(Mercy), 믿음(Faithfulness)은 저버렸습니다. 부정한 하루살이를 걸러내려 애쓰면서, 정작 거대한 악인 낙타는 아무렇지 않게 삼켜버리는 모순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가시적인 의무에는 철저하면서, 정작 삶의 현장에서 이웃을 향한 따뜻한 긍휼이나 사회적 공의를 실천하는 일에는 무관심하지 않습니까? 종교적 형식에만 치중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주님의 마음을 닮은 본질에 진실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