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비통의 이유는 나사로의 죽음이 아닙니다. 죽음 앞에 꼼짝하지 못하는 소위 ‘살았다고 하는 사람들’때문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음에도 그리고 ‘믿습니다!’라고 확실하게 대답했던 마르다였지만 또다시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반응합니다. 바로 이런 반응들에 대한 비통입니다.
우리들을 향해서 비통히 여기시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수님을 구원의 주!라고 매번 고백하면서도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실 때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요? 확실하게 예수님을 믿고 맡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현실의 장벽은 그만큼 두껍고 또 날카롭고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그런 현실의 장벽속에서 ‘믿음으로 극복하고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성화의 삶’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보시며 비통해 여기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시원한 사이다 한잔의 믿음을 기쁨으로 접대할 수 있는 여유가 넘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