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는 말씀으로 묵상해봅니다. 히스기야는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때문에’ 원망, 불평합니다. 기도는 소망과 평온함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불행과 절망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때문에’신세타령하며 불평하고 불만만 늘어놓는 사람이 될 것인가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당연히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당한 ‘~때문에’는 무엇인가요? 어떤게 있나요? 그게 뭐든지, 어떤 것이든지간에 ‘~때문에’ 기도하는 트리니티 성도 여러분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