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0일(금요일) 큐티: 욥기 32:1~10
엘리후가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성경학자들에 따라서 좋게 평가하는 학자들이 있는가하면, 욥의 3친구처럼 역시 그렇고 그런 친구로 평가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배우려면 말못하는 나무, 풀 한포기를 통해서도 배울것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배우지 않으려고 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셔도 아무것도 배울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엘리후에 대해서도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훨씬 유익합니다.
저는 엘리후를 통해서 배워야 할 점만 요약해서 나누려고합니다. 첫번째는, 그의 들음의 자세입니다. 모든 친구들이 다 이야기하기까지 그는 끝까지 참으며 경청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세사람이 말을 그치니~’때까지 기다린 그 태도가 인상적입니다. 혹시 대화중 중간 중간에 말을 끊어 버리고 끼어들어서 상대방의 말을 막아버리지는 않았는지요? 상대가 말할때는 끝까지 듣고 경청하는 자세는 대화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것입니다.
두번째로는,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라는 식의 태도를 지적하는것입니다. 물론 욥이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의롭다’라고 한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자신에게 이처럼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의구심과 불만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만일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음에도 고난만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이 잘못하시는겁니다. 그러나 그럴리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는데는 ‘어떤 선하신 목적’이 있기때문입니다. 욥도 자신이 이해할 수 없어서 그렇지 욥에게 닥친 고난은 후에 욥의 순전함을 100% 증명하는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사탄도 더 이상 욥에겐 어떻게 할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오히려 욥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신것입니다. 따라서 엘리후의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충고는 옳은것입니다.
우리도 살면서 ‘이유없이 고난을 당한다’라는 생각이 들 때 하나님의 선하심이나 공의로우심에 대해서 본의 아니게 의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히시려는 목적으로 고난을 주시지 않습니다. 고난에는 고난의 나름대로의 유익이 있기때문임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진행될 욥의 Story를 통해서 많은 영적인 배움과 깨달음이 있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