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5일(주일) 큐티: 디모데후서 2:20~26
오늘 말씀에서는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라는 구절로 묵상하겠습니다. 20절을 보면,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 그릇이 있을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라고 했는데 우리말 성경에는 ‘어떤 것은 귀하게 사용되고 어떤 것은 막 사용되기도 한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금그릇, 은그릇, 나무 그릇, 질그릇 자체가 귀하고 천하고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맥상으로는 ‘어떻게 쓰이느냐’가 더 중요한 것처럼 들립니다. 물론 금그릇을 막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이왕이면 금그릇, 은그릇이 좋겠지요.
중요한 것은 주인이 쓰시기에 요긴하게 쓰이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요긴하게 쓰이는 그릇은 분명히 ‘금그릇’ ‘은그릇’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생각하길 원하는 것은 ‘귀하게 쓰임 받고자 하는 간절함과 노력’이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을 ‘나는 나무그릇, 혹은 질그릇 일거야!’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귀하게 쓰임 받고자 하는 간절함이나 노력을 포기했다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내가 내 자신을 질그릇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도, 주인의 눈에는 금그릇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을 더 중요함을 기억해야합니다.
가룟유다는 사람들 눈에는 분명히 ‘금그릇’처럼 보여야합니다. 왜냐하면 그 많은 인류속에 선택받은 12명의 제자중 한명이기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귀하게 쓰임받지 못했습니다. 천하고 더럽게 쓰임받은 사람이 가룟유다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12명의 제자들 모두 귀하게 쓰임받길 원하셨을겁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 자신이 귀하게 쓰임받길 포기해버렸으니 결국 하나님의 손에서는 그는 금그릇이 아니라 천하게 막 쓰임받는 그릇이었던겁니다.
따라서 오늘도,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면서 ‘나는 천한 그릇이야’라고 결론짓지 않길 바랍니다. 예수님도 사람들 볼 때엔 ‘버림받은 돌’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귀한 모퉁이 돌’이 되셔서 모든 건물들을 하나로 연결하여 완전케 하시는 귀한 금 그릇 이셨습니다.
오늘도, 우리 모든 성도 여러분들이 귀한 그릇으로 쓰임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본문에서도 ‘깨끗한 마음,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힘쓰는 사람, 말조심, 그리고 온유하고 겸손하며 잘 참고 지혜롭게 권면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오늘도 주 안에서 아름답게 쓰임받는 귀한 그릇답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