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9일(토) 큐티: 로마서 15:22~33
로마서가 기록된 시기를 주후 57년 경 겨울로 보는데, 이는 사도 바울이 제 3차 전도여행을 마칠무렵 고린도에 머물던(행20:3)때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는 사도 바울이 곧 로마에 죄인의 신분으로 재판을 받기 위해서 체포되어 가던 때를 앞두고 있는 시점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에 나오듯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서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라고 했는데 마게도냐에는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가 있었고 아가야에는 고린도교회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경우 연보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헛소문과 오해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기꺼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헌금을 한것입니다.
이런 헌금을 받아들고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교회로 향하지만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그는 많은 핍박과 오해속에 고소당하고 로마로 죄인의 신분으로 이송당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으로 모든일을 소망하며 계획하는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존경심이 듭니다.
특히 27절을 눈여겨 보세요,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표현합니다. ‘빚진 자’라는 표현은 로마서에서 이미 나눈바 사도 바울이 자주 사용하는 것입니다. 곧 ‘복음에 빚진자’라는 뜻인데, 많은 사건들과 오해속에서도 복음을 받기까지의 과정들속에서 보면 모든 것이 ‘복음에, 복음을 위해, 복음에 의한 빚진자’라는 겸손함을 잊지 않은 것입니다.
복음의 빚을 갚으려고 주님께 헌신한 사람들은 기독교 역사에 수없이 많은데, 그중에는 인도에 들어가 성경을 완역했던 윌리엄 케리(W illiamCarey), 아프리카 절반을 여행하며 복음을 전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정든 고국과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중국에 들어가 복음을 전한 허드슨 테일러(J. Hudson Talyor), 또 오늘날 우리들이 있기까지 고국땅에 와서 한국의 교육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아펜젤러((H .G. Appenzeller), 그리고 전도와 교육및 교회의 성장을 위해 노력했던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박사등은 모두가 이런 깨달음속에 삶을 드린 분들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이런 ‘복음에 빚진자’=’은혜를 아는 자’로서 받은 말씀대로 실천하는 아름다운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마지막 16장은 사도바울의 마지막 개인 인사의 내용들이기에 따로 큐티하지 않겠습니다. 성도 여러분들께서 은혜받으신대로 받은 은혜 자유롭게 비상연락카톡방에 남기셔서 받은 은혜를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로마서를 통해 함께 은혜 나누었음에 기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