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4일(목요일) 큐티: 로마서 2:12~16
오늘 본문 말씀중에서 중요한 요절은 두군데입니다. 중요성에 있어서 순위를 정하면 16절이 첫번째 요절이됩니다.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왜 이 구절이 중요하냐하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심판하시는 그날’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의 날을 인정하지 않으면 율법도, 양심도, 마음도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노아의 방주를 생각해보세요. 방주를 아무리 잘만들어도 ‘홍수’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유월절 어린양의 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피를 많이 잘 바른다고해도 ‘장자 재앙’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율법, 양심, 마음이 중요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는 그 날’이 있기에 우리들은 율법도 양심도 그리고 마음도 함부러 대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것입니다. 주님의 날까지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소원하며 노력하며 살아야하는것입니다.
두번째로 중요한 구절은 13절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언젠가는 서야 할 우리들임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배우고 실천해야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율법을 잘 보관하고 열심히 듣고 보고’하는 자가 아니라고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율법을 행하는 자’라고 일러줍니다. 12절과 13절에 걸쳐서 ‘율법’이라는 표현이 무려 다섯번이나 사용됩니다. 율법은 그만큼 유대인들에겐 생명만큼, 혹은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율법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것은 ‘지키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는 삶이라고 전하고 있는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만큼 귀한, 혹은 생명보다 귀하다고 여기는 그 무엇이든지 간에 그 자체가 귀한 것이 아닙니다. 그 귀한 것을 가지고 얼마나 하나님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서 순종하고 사용했느냐가 중요한 것 아닐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알고,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다 되는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예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이 중요한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 날이 찾아왔을 하나님 앞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