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라 하시니 있었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6하원칙에 따라서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누가– 하나님이, 언제-태초에, 어디서-없음, 무엇을-천지를, 어떻게-말씀으로, 왜-없음으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어디서’라는 질문에 대한 무답은 ‘왜’라는 질문의 답으로도 대신할 수 있는데, 성경에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한가지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님이 하셔야 할 대답이 아니라 우리가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답이 성경 전체에 있기때문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에 앞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확연한 차이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질문에 답하실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의 방법도 이유도 모르는 무지한 우리들입니다. 흔히 우리는 ‘왜’라는 질문과 답변 사이에는 질문하는 사람보다 답변해야 하는 상대에게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왜’라는 질문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질문자의 무지함과 부족함이 있습니다. 모든 걸 다 안다면 구지 ‘왜’라는 질문은 필요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솔직하게 인정해야 하는 것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무지와 한계성’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죄, 사망, 마귀에게 종 된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 앞에 선택권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이미 선택권을 빼앗겨 버린 우리들입니다. 죄의 소원이 발동하기 시작하면 그 죄의 소원을 잠재울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창세기서에 나오는 가인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죄의 소원이 있지만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는 죄의 소원을 다스릴 의지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죄의 종된 자들에게 피해가지 않는 것이 죽음입니다. 단 한명도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이유가 ‘종됨’의 비밀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탄의 종이 된자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있으라 하시며 있었고’라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사람들에겐, 하나님이 말씀하신 죄사함과 구원의 약속이 있습니다. ’왜’라는 질문보다는 ‘있으라 하시매 있었고’라는 제목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 약속을 소망할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의 진정한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