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원래 의미는 좋은 것이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표현은 멸시와 조롱의 뜻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왕 아하시야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을 찾아 사신을 보냅니다. 아하시야는 아합의 아들로서 북이스라엘 왕입니다. 그에 대해 열왕기상 22장 53절을 보면 “바알을 섬겨 그에게 예배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기를 그의 아버지의 온갖 행위 같이 하였더라.”라고 일러줍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 우상을 섬기기에 급급했던 그에게 엘리야선지가 하나님의 진노의 메시지를 전하자 아하시야는 군사50명을 보내어 데려오게 합니다. 바알을 위해서는 사신을 파견해서 묻게했던 아하시야였지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위해서는 군사를 보내서 잡아 오게 한 것입니다. 이런 배경속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이여’라며 찾아온 병사들에게 진노하며 하늘에서 불을 내려 죽게 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 북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하나님을 무시했는지에 대해서는 엘리야의 뒤를 이은 엘리사의 사역 초반부에서도 나타납니다. 벧엘을 찾아간 엘리사에게 어린아이들이 ‘대머리여 올라가라(엘리야의 승천에 빗댄 빈정거림)’라며 쫓아다니며 엘리사를 조롱하는 장면이 2장에 자세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내용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던 시대상황을 보여주고 있고, 열왕기서 전체의 내용이 이런 치명적인 잘못들에 대해서 지적합니다.
사람의 특징은 너무 익숙해지면 무시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는 물건, 사람, 심지어는 하나님에게까지도 해당됩니다. 물건도 처음에만 좋지 계속 사용하면 좋은지 모릅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너무 가까워지면 흠이 보이고 함부로 대하게 됩니다. 이런 치명적인 오류는 하나님을 향해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북이스라엘 나라의 모습이며 남유다의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를 몰라서가 아니라 교회를 너무 잘 알아서 대적하기 쉽습니다. 신앙생활도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지만 알면서도 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전능하시며 전지하신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말로만 하나님을 부르는 우리가 아니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고 섬길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교훈이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바로 잡아 주는 귀한 생명의 말씀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